본문 바로가기
성공의 법칙

공황장애를 극복한 사람이 알려주는 공황장애 극복하는 방법

by 미운오리 고라파덕 2023. 8. 8.

공황장애야. 그래. 네가 나타나든 말든 난 내 할 일 한다.

 

제가 10년 간의 공황장애를 끝내게 한, 마음속에 되뇐 말입니다. 저는 이 말로써 공황장애가 사라졌습니다. 아니, 저는 현재 공황장애가 무섭지 않습니다. 나타나도 상관없습니다. 제 할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공황장애를 이렇게 감정적으로 대처합니다. "공황장애, 왔냐. 놀다 가라."라고 친한 친구가 우리 집에 잠깐 놀러 왔다가 자기 집에 돌아가는 그런 존재로 치부합니다.

 

"야!!! 어쩌라고? 니가 나타나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난 내 할 일 할 거야. 상관없어. 너 때문에 망하더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는 일은 없어. 내 일 할 거야."

 

 이 자신감이 중요합니다. '공황장애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가 아니라 '공황장애가 있든 말든 상관없어.'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공황장애를 강화시킵니다. 회피하려고 할수록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백곰 논리가 있습니다. 연구원이 실험자에게 "백곰을 떠올리세요. 그리고 백곰 생각을 하지 마세요." 그리고 연구원은 실험자에게 묻습니다. "백곰 생각을 멈췄습니까?" 당연하게도 모든 실험자들은 백곰 생각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연구원이 백곰 생각을 멈췄냐고 물어봤을 때도 백곰이 떠올렸습니다.

 

 공황장애를 극복하는 법은 극복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나의 일부분이라고 받아들이고 것입니다. 아이러니하죠. 공황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극복을 포기하고 받아들이라니 말이죠.

 

 극복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질수록 공황장애는 더욱 커집니다. 왜 그럴까요? 극복 의지를 다지고 공황장애가 발생하고, 다시 의지를 다지고 공황장애가 발생합니다. 이 상태를 무한반복하기 때문에 결국 절망하게 됩니다.

 

수백 수천 명 앞에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공황장애가 발생해서 망칠 것이라는 상상이 공황장애를 강화하다.

 자신만의 내가 공황장애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가장 많이 반복하는 단 하나의 생각이 존재합니다. '이 상황에서 공황장애가 발생하면 나는 모든 것을 망칠 거야'라는 생각말이죠. 사람은 매일 다양한 생각을 할 같지만 어제 하던 생각을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하게 됩니다. 계속 같은 생각을 반복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공황장애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수많은 사람 앞에서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 공황장애가 발생해서 모든 것을 망칠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찾았습니다. 그 생각을 반복하면서 절망 속에서 보냈습니다.

 

'수천 명의 관중 앞에서 공황장애로 말을 더듬고 망친다고 해도, 나는 프레젠테이션을 끝까지 마칠 것이다.'라고 마음을 먹고 나서 공황장애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회피도 아니고 제거도 아닙니다. '공황장애가 있든 말든 자신이 하는 일을 멈추게 할 수 없다'라는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합니다.

 

10년 간 공황장애를 데리고 살다.

 

저의 공황장애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여러분에게 작게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한테 공황장애가 나타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 넘어가기 전, 겨울방학 밤에 명상을 하던 중에 발생했습니다.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책을 읽고 명상 도중에 '나 왜 숨을 안 쉬고 있지?'라는 생각 들면서 놀라 숨을 헐떡이게 되었습니다. 그 상황에 느꼈던 감정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 이후로 다시 그 감정이 들까 봐 무서워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무한순환 고리에 빠져들어 공황장애가 나타났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은 걱정 속에서 보내게 됩니다. 공황장애가 나타날까 봐 매 순간이 걱정되고, 공부는 안되고, 성적은 떨어지게 되니 3학년을 절망 속에 보내게 됩니다. 시간이 흘려 수능날이 되었습니다. 긴장하면 안 되니까 우환청심환을 먹고 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첫 시간에 국어 시험지를 보는데 몸이 붕 떠있다는 느낌을 받고 시험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국어 시험을 어떻게 시험을 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이후의 시험들은 이미 마음이 꺾여버려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대충 치르고 끝냈습니다.

 

 수능을 대차게 말아먹어서 '전문대학이라도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와중에 수시합격을 하게 되어 그래도 4년제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학교에 갔다고 공황장애가 없어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불안에 관련된 책도 읽어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담도 받아봤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생각하는 것을 멈춰버리다. 

 

 사람이 어떻게 생각을 안 하면서 살겠어요? 하지만 공황장애를 생각하는 게 너무 무서워서 사고하는 것을 멈춰 버렸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행동했습니다. 어떤 일을 하면 적어도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겠다.'라는 간단하게라도 합니다. 저는 그 생각마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척추반사에만 의존한다'는 표현이 적당한 것 같습니다.

 

 한울회라는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아람단의 수련회 책임자 역할을 맡는 선생님 활동을 하는 동아리입니다. 초등학생들을 학교에서 관광버스에 태워 수련회에 오면 아이들을 이끌고 활동을 도와주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위 글에서 말했듯이 생각하는 것을 차단했다고 했죠. 그래서 오만 사고를 다 치고 다녔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하는 행동이라면 하지 않는 행동을 다 하고 다녔습니다. 빠트리고 까먹고 매일 사고를 쳐서 모두에게 요주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결국 동아리를 그만두고 군대에 지원해서 도피를 합니다. 군대 생활이 잘 되었을까요? 사고뭉치에 관심병사가 되었습니다. 일 못하고 도움 안 되는 병사를 폐급병사라고 군인들끼리 부릅니다. 당연히 저는 폐급 병사라고 불렸고 저는 제 스스로 자살 안 하고 만기전역을 한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정신과 의원을 찾아가다.

 

 정신과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상담을 받으며 위안을 얻었습니다. 저에게 "그렇게 심각한 상태에서 군대를 전역했어요?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 대단하네요."라는 말을 해주었을 때 기뻤습니다. 드디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행복했습니다. 부모님도 저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타인에게 위안을 얻게 되었으니 말이죠.

 

 저의 병명은 '강박증에 의한 공황장애'였습니다. 공부에 대한 집착이 불러온 마음의 병이었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싶었고, 부모님의 기대에 부흥하고 싶었고,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는 학생이고 싶었습니다. 마음과는 반대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제 자신을 탓하고 비난하다 보니 망가진 것이었습니다.

 

 상담과 정신과 약을 처방받으며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약을 처방받는다고 공황장애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과 약은 감정적인 부분을 누그려 뜨려 줍니다. 두려움의 크기를 줄여 이겨나갈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약을 먹고 공황장애가 없어질 거야'라고 생각하면 실망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저도 약이 공황장애를 없애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습니다. 고통스러웠으니까.

 

 

공황장애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증상이 나타날까 봐 무서운 것이다.

 증상을 수많이 반복이 되면 '이쯤 되면 공황장애가 나타나겠네.'라고 예상하게 됩니다. 그 후 마음속에 불안이 나타납니다. 증상이 없어도 증상이 나타날까 봐 불안이 형성됩니다. 한편으론 공포영화와 같습니다. 날 놀라게 하는 귀신도 두렵지만 귀신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무섭게 만듭니다. 

 

 

 

공황장애를 극복하는 법은 공황장애랑 친구를 먹어야 한다.

 

 공황장애는 언제든지 왔다가 가는 존재입니다. 통제하려고 하지 마세요. 매력 있는 이성을 보고 눈이 돌아가는 것은 본능입니다. 앞만 바라보려고 해도 잠깐 확인 좀 하고 싶다는 욕구가 드는 것처럼요. 통제하고 싶다고 통제가 되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너는 너 할 일해. 나는 내 할 일 할게."

"어이, 왔냐. 그래, 놀다가."